창세기 33:1-2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을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창 30:1)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면 하나마나 사랑이라는 것은 이 땅에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본 사람은 다 아실 것입니다. 야곱과 같은 경우는 아주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노골적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안전지대로부터 위험지대 순서로 처자식들을 배치하였으니, 아버지 스스로가
자기는 무정하고 무자비한 비정상적인 부모임을 공공연히 공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제일 뒤에 있게 되었던 요셉이외에는 모두들 실망했을 것이고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 아들들은 요셉이외에는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 가정에서 계속 문제들이 터지고 다툼이 끊일 날이 없었던 가장 큰 요인은 야곱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이유로 시기 질투의 대상이었던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가는 일도 가정 안에서 발생했던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누구나 자녀 하나하나를 100%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사회에서는 똑같은 100% 사랑을 기대할 수 없지만 가정 내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하나를 똑 같이 100% 사랑하시는 것처럼 부모님들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자식을 10명 가진 부모는 독자를 가진 부모보다 한 자녀를 덜 사랑합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 부모에게 있어서는, 독자 아들 한명이 귀한 것이나 10자식들 중에 한명이 귀한 것이나 귀한 정도는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자녀들이 다 절대로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점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엄마 나 사랑해? 아빠 나 사랑해?” 자기를 “100%” 사랑하는지 확인해 보려는 질문입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물어보며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들은 자신이 최고의 사랑을 받는 대상임을 확신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현저히 떨어져서,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자신감이 결여되고, 인내력이 부족하게 되어, 성취도가 매우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큰일을 성취한 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에
의해서 사랑을 받고 있고 존경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사랑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싫음이 아니고, 무관심입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자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셔도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님이 자기에게 무관심하다고 믿도록 만드신다면 미워하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끌어 안아주고, 감싸주고, 웃어주고, 참아 주고, 잘해 주는 것만을 사랑의 표현인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달을 아끼는 것이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무조건 잘 대해 주는 것은 미움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잘한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낙망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지만, 잘못하면 엄하게 책망하시고, 인정에 끌리지 않고 강하게 훈련시켜 주시는 것과 같은 것들도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야곱 같이 생각없이 무관심을 드러내어 자식들에게 "미움을 표현"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지 마시고 "사랑을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8/24/2008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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